마천루 설계에서 최대 고려 사항은 바람이다. 빌딩이 항상 뻣뻣이 서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빌딩은 거대한 돛처럼 거동한다. 그래서 빌딩이 바람에 흔들리고 기우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공학적 기술이 요구된다. 구조적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흔들림과 진동에 매우 민감하다. 잘못 설계된 건물에 있다가는 바람이 심하게 불 때 멀미가 날 수도 있다.

 

놀라운 것은 단지 공기역학적 설계나 내풍 설계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거다. 빌 베이커와 대화하면서 나는 요즘의 똑똑한 마천루는 ‘바람을 교란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천루를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쓰는거요? 건물이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서 있을 방도입니다. 때로는 지진 활동도 고려해야 하고요. 하지만 지진활동이 없는 곳은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은 없죠. 바람 문제는 피해갈 도리가 없어요.”

 

바람이 특정 모양의 사물, 가령 원기둥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바람이 원기둥을 싸고돌면서 와류라는 소용돌이 흐름을 형성한다. 바람이 심한 날 가로등이 건들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바람에 휘말린 빌딩을 본 것이다. 가로등이 마천루 높이로 늘어난다고 생각해보라. 위태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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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류 발산

 

대개의 건물은 불규칙한 바람에 의한 진동은 견딘다. 문제는 와류가 불규칙한 바람이 아니라는 것. 와류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으로 거듭 발생한다. 그래서 와류를 주기력이라고 한다. 그림을 보면 원기둥(흰색 동그라미) 뒤로 방울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각각의 방울이 바람이 유발한 소용돌이다. 이 소용돌이들이 일종의 리듬을 만들어 빌딩을 좌우로 밀어댄다. 이 현상을 와류 발산이라고 한다.


자세히 들어가기 전에 공진 주파수라는 개념부터 알고 가자. 물체마다 고유 진동수가 있다. 외부 충격의 진동수가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면 물체의 진폭이 증가한다. 이것을 공진 현상라고 한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자. 집 근처나 아파트 단지에 그네가 있다면 지금 당장 가서 과학의 이름으로 직접 앉아볼 것을 권한다. 높이 올라가려면 타이밍을 잘 맞춰 발을 굴러야 한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타이밍을 놓치면 그네가 흐름과 높이를 잃는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네의 고유 진동수에 맞춰 발을 차고 있는 것이다. 때맞춰 발을 차면 그네에 공진이 발생하고 이것이 그네의 좌우 동요를 증폭해서 그네가 더 높이 올라간다. 그네를 탈 때는 공진 현상이 긍정적 효과를 내지만, 빌딩을 설계할 때는 골칫거리가 된다.

 

마천루마다 고유의 진동수가 있다. 다시 말해 저마다 고유의 흔들림을 가지고 있다. 어느 (재수 없는) 날, 바람이 우연히 빌딩의 고유 진동수와 동일한 진동수의 와류를 만들어내면, 다시 말해 타이밍에 맞게 발을 차면 빌딩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와류가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건물을 때리면 빌딩의 좌우 동요가 증폭하고, 이를 제때 인지해서 조치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참사로 이어진다. 짧게 말해 건물 고유의 진동수와 바람의 진동수가 우연히 (또는 재수 없게) 일치하면 건물이 무너져라 흔들리다가 실제로 붕괴하기도 한다.

 

다행히 모든 마천루는 와류 발산을 염두에 둔 내풍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마천루의 외형 자체도 내풍 설계의 일부다. 보기에 멋스럽게만 짓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와류가 형성되기 어려운 모양으로 짓는다. 부르즈 할리파에 대해 베이커를 인터뷰할 때도, 바람의 영향과 그에 따른 설계상의 쟁점들을 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부르즈 할리파 특유의 삼발이 구조는 바람을 교란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빌딩이 동시에 여섯 방향을 가리키며 어떤 주기풍 패턴도 흩어놓는다. 애초에 와류가 형성되지 않으면 공진에 따른 잠재적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와류 발산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풍속이 높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높이가 800m가 넘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초고층 건축물에 미치는 바람의 영향은 가히 파괴적이다.
일반적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풍속velocity, V이 높아진다. 설상가상으로 바람이 마천루에 가하는 압력은 풍속의 제곱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높은 건물은 그만큼 더 심한 바람 응력과 싸워야 한다. 바람 응력에는 아무리 신중하게 설계된 마천루라도 최상층부가 흔들린다.

 

바람공학 전문가 제이슨 가버는 이렇게 설명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고층건물의 움직임 정도는 건물 높이의 1/200에서 1/500입니다.” 이 공식에 따르면 부르즈 할리파는 상층부가 바람에 2~4m 움직인다.
이런 높이 효과를 얼마간 상쇄하기 위해 대개의 마천루는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가늘다. 그런데 부르즈 할리파는 런던의 더 샤드(템스 강변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72층 빌딩) 같은 마천루와는 좀 다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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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할리파 더 샤드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며옆면이 미끈한 경사면을 이루는 더 샤드와 달리, 부르즈 할리파는 ‘셋백setback(건물의 위층을 아래층보다 조금씩 후퇴시켜 계단 모양으로 짓는 것)’ 구조로 단계적으로 가늘어진다. 빌딩의 전체 높이를 26개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바로 아래 구간보다 좁게 그리고 포지션을 달리해서 앉히는 것이다. 이 디자인은 빌딩의 폭을 점진적으로 줄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매우 중요한 부가 효과까지 낸다. 그네 타기에 대입해서 설명하자면, 26개 셋백은 바람에 맞서 각자 다른 타이밍에 발을 마구 쳐대는 26개의 다리가 되어 와류의 형성을 막는다.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치밀하게 의도되고 계산된 효과다.

 

부르즈 할리파 프로젝트는 두바이 사막에 첫 삽을 뜨기 한참 전부터 컴퓨터 유체 역학이라는 수리적 문제 해결 방식을 통해 광범위한 실험을 거쳤다. 주야장천 계산만 한 게 아니다. 부르즈 할리파의 실제 미니어처 모형을 제작해서 거기다 센서를 잔뜩 붙이고 다양한 바람 환경을 만들어 결과를 따졌다. 분석 결과 놀라운 결론이 나왔다.


초기 디자인에서는 셋백 구간들을 시계 반대 방향의 나선형으로 배열했다. 그런데 모델링을 해보니 구간들을 시계 방향으로 배열했을 때 빌딩이 더욱 안정적이었다. 또한 뱃머리가 물을 가르듯 모형 빌딩의 세 날개가 공기를 갈랐지만, 건물의 한 면에서 와류가 강하게 일었다.


그런데 건물 전체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자 이 잠재적 유해 풍하중(풍압이 구조물에 가하는 하중)이 사라졌다. 부르즈 할리파는 이런 모델링과 풍동시험과 명민한 구조 설계를 거쳐 세상에서 가장 높고 미더운 마천루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공기역학적 설계 말고도 마천루의 바람 저항력을 높이는 방법은 또 있다. 이 방법이 타이완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타이베이 101 타워의 비밀은 88층과 92층 사이에 있다. 바로 TMD Turned Mass Damper(진자형 제진기)라고 하는 진동 흡수 장치다. 이 거대한 금색 강철 추가 빌딩이 바람에 기울어지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빌딩의 중심을 잡아준다. 작동 원리를 좀 더 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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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101의 TMD

 

F = ma라는 공식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2법칙인 가속도의 법칙이다. 질량이 m인 물체에 F의 외력이 가해지면 a의 가속도가 생긴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해서 가속도는 운동하는물체의 속도 변화율이다. 공식으로 말하면 가속도 = 속도변화 ÷ 소요시간이다. 바람이 외력으로 작용해 구조물에 원치 않는 움직임을 초래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TMD는 이 외력에 ‘기대는’ 방식으로 빌딩의 과도한 동요를 억제한다. 타이베이 101의 TMD는 무게가 730톤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하지만 이 무게는 빌딩 전체 무게의 0.5%에도 못 미친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작은 질량체가 어떻게 자신보다 월등히 큰 구조물의 흔들림을 막는 걸까? 비결은 추의 진동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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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101

 

TMD는 마천루의 꼭대기 근처에 설치된다. 거기가 가속이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빌딩이 한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 추도 즉각 작용한다. 스프링 장치의 도움으로 빌딩과 반대 방향으로 흔들린다.


TMD의 진동 빈도가 빌딩의 진동 빈도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일치하면 빌딩은 서서히 정지 상태로 돌아간다. TMD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제작될 수 있고, 가공할 풍속(타이페이 101의 경우는 시속 216km)에도 구조물의 진동을 효과적으로 흡수한다.

 

타이베이 101의 TMD 용도는 빌딩을 바람에서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타이베이 101은 주요 지진 단층선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TMD 설계 덕분에 지난 2002년 공사 중에 발생한 리히터 규모 6.8의 지진을 버텨냈다.

 

<출처 : 사이언스 앤 더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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